[문학 > 외국소설] 바보 이반

저자 : 레프 톨스토이 | 출판사 : 박형규러시아문학공작소 | 출간일 : 2013년 02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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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872290 | 파일형태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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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소개

책소개

부르주아적 사회체제의 모든 공포, 즉 돈과 권력과 전쟁을 통해 인간의 야만성을 폭로하는 톨스토이의 예술 이상의 예술로서의 민중문학. 맏형 무관 세묜에는 전쟁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표현되고, 배불뚝이 타라스(몇몇 원고에서는 수전노)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델이며, 이반의 나라의 유일한 법칙―“손에 못이 박힌 자는 식탁에 앉게 되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자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은 특권계급의 기생충적 생활의 영원한 폭로로 이바지할 것이다.  -P.I. 비류코프가 인용한 톨스토이의 말 중에서-

저자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세계적인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1828년 8월 러시아 동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툴라시(市) 근교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지주 귀족인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 때는 어머니를, 열 살 때는 아버지를 잃고, 그가 열세 살 때 고모 오스텐-사켄 부인까지 죽자 카자니에 있는 고모 유시코바 부인에게 맡겨졌다. 1846년 카자니 대학교 동양어 학부에 입학했다가 법학부로 옮겼으나 학구적 연구를 견 못하고 중퇴했다. 이후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와 농사개혁과 농민생활의 개선을 위하여 힘썼으나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것을 단념하고 1848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모스크바에서 살면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1849년 페테르부르그 대학교 법학사 자격시험에 응시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가을에 다시 귀향, 야스나야의 저택 울타리 안에서 농민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개설하였다. 1851년 맏형 니콜라이가 있는 카프카즈로 가 군에 입대, 이듬해 1월 사관후보생 시험에 응시해 포병 하사관으로 포병여단에 편입. 1852년에 발표한 처녀작 『유년시절』의 성공으로 문단에 등단, 이어서 『카자크사람들』을 기고, 다뉴브 파견군에 종군하고 크림 방면 군대로 옮기면서 『세바스토폴리 이야기』 등의 작품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856년 퇴역, 다시 야스나야 폴랴나에 학교를 세우고 『결혼의 행복』을 집필,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하였으나 1862년 시의(侍醫) 메르스의 둘째 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 뒤, 관헌의 감시와 가택 수색 등으로 야스나야 폴랴나의 학교를 폐쇄하고 《야스나야 폴랴나》를 휴간한다. 행복한 신혼생활 속에서 1869년 최초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완결하고, 1873년 두 번째 장편 『안나 카레니나』에 착수. 그러나 그 무렵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로 극심한 정신적 혼란과 위기를 겪으면서 그 해답을 찾아 과학에서 철학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종교에 주의를 기울이며 『고백』 『나의 종교는 무엇에 있는가』 등의 저작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생에 대하여』 등의 작품들을 모두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문학이나 예술의 무의미함과 몰가치성을 역설, 예술을 포기하고 일련의 종교, 도덕문제를 다룬 논문과 함께 어린이와 농민을 위한 동화, 민화, 『독서의 고리』 등을 집필한다. 그러나 창작에도 관심을 기울여 죽음의 문제를 소재로 한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성도덕의 퇴폐성을 폭로한 『크로이체르 소나타』, 교회제도나 재판제도의 불합리함을 비판하여 그리스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한 『부활』 등의 인생문제,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만년의 톨스토이는 세계적 대문호라는 명성 외에도 원시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둔 톨스토이주의(간이생활, 무저항, 박애)를 제창, 인생의 스승으로서 전 세계인의 정신계의 큰 지도력을 갖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토지 사유제 폐지, 저작권의 포기 공표 등으로 아내나 자식들 사이에서 불화와 충돌이 잦아, 만년의 비극적인 가정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1910년 10월 마침내 아내에게 편지를 남기고 딸 알렉산드라와 의사 마코비쓰키를 데리고 집을 나와 방랑의 길에 올랐으나, 도중에 발병하여 11월 7일(신력 11월 20일)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며, 11월 9일 야스나야 폴랴나 저택 안 숲속에 묘비 없이 묻히게 되었다.

목차

바보 이반 작품해설 톨스토이 프로필 톨스토이 연보 역자 프로필